상권에서는 백범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중국으로 망명하기까지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백범의 종교관은 다양했다.
이런 백범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는 효도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나 스스로를 성찰해 볼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
백범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된 국가를 만들기를 원했으며 민족적 자주의식으로 이를 달성하고자 했다.
또한 백범은 스스로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듯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모습을 소망했다.
우리 모두는 삶을 살아가는 목적도 가치관도 다르다.
나는 백범일지를 직접 읽으며 백범 김구 선생이 바라보는 삶의 지향점은 어디인지, 나는 그와 비교하여 어느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지 스스로를 성찰해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 백범의 유년시절 '상놈'이라고 차별받고 힘들어 했을 모습이 떠올라 책을 읽으며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당시 을사늑약과 경술년의 치욕으로 많은 것을 느낀 백범 김구는 좀 더 구체적인 교육구국운동과 애국계몽 활동을 펼치기로 다짐한다.
신민회 사건으로 인해 백범은 15년형을 받게 된다.
이후 계몽활동을 이어갔으며 학교를 세웠다.
어쩌면 백범도 이 말과 일맥상통하듯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기르기 위해 본인을 먼저 수양하는 데 집중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가 위독했을 때 백범이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내어 아버지의 약으로 쓰게 했다고 한다.
백범의 어머니와 부인 최준례의 헌신이 있었기에 백범이 자신의 뜻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평생을 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몸바쳤으나 정작 같은 민족의 총에 맞아 죽게 되었으니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범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된 국가를 만들기를 원했으며 민족적 자주의식으로 이를 달성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