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가 급속히 확산되는 현 사회는 그에 따른 문제점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 및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 문제를 단순히 시장의 확대를 통해서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코포라티즘이 주목을 받고 있다. 코포라티즘은 논자에 따라 내용이 너무 다양하고 상이하다.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관점에서 코포라티즘을 살펴보고자 한다.
코포라티즘의 기원은 멀리 증세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도시의 등장과 함께 코포라티즘의 형태라고 볼 수 있는 삼자체제가 봉건사회적 형태로 형성되었다. 왕실, 귀족계층, 도시민으로 구성된 일종의 삼각체제 구도는 현대자본주의의 국가-자본가-노동조합의 코포라티즘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 당시 국왕은 귀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도시민들과 연합을 통해 세력을 강화하려 했다.
봉친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전통적 중세적 질서는 점점 약화되어 갔는데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산업화와 함께 성장하기 시작한 '자유주의' 사상은 봉건국가의 권위를 부정하였으며, 19세기 중 ․ 후반 이후 급속도로 전파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는 기존 교회의 권위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 과정에서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맞서 전통질서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장들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1891년에 선포된 교황 레오 13세의 칙서 '새로운 것에 관하여(Rerum Novarum)'이다.
이것을 첫 번째 코포라티즘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칙서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계급투쟁의 대립성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합의주의라고 주장하였고, 이것을 통해 자본가와 노동자는 각자의 조직을 통해 서로 밀접히 연결됨으로써 대립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두 번째 코포라티즘은 1차 대전 이후 정치 ․ 경제적 격동기 속에서 나타났다. 1차 대전 이후 유럽은 경기불황, 대량실업, 높은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가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보호주의, 산업의 합리화, 독점적 기업합병, 중앙권위의 확대 등을 주장하는 국가 합의주의가 지지를 받게 되었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그는 직능별 조합을 조직하여 국가의 통제 아래에 두고 코포라티즘적 국가(corporate state)의 건설을 시도하였다. 이탈리아의 코포라티즘은 국가적 코포라티즘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는데, 국가권력과 대기업과의 동맹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기득권층의 이해를 보호하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경제의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퇴보와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