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안보의 실패와 제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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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안보의 실패와 제2차 세계대전
집단안보의 실패와 제2차 세계대전

I. 집단안보의 흥망성쇠
1919:베르사유 전후 처리
전쟁에서 진정으로 승리한 자가 과연 있을까 물론 전승국들의 경제는 4년간에 걸친 긴박한 전면전의 결과, 패전국 못지않게 피폐되었다. 주요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전쟁책임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봄으로써 혹독한 평화안을 정당화하였지만 구체적 내용에서는 견해가 달랐다. 그러나 베르사유 강화회의를 지도하는 세력은 하나의(혹은 그 이상의)유럽 강대국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 베르사유에 모인 강화대표들은 확실히 장래 독일의 재부상 가능성을 두려워했다. 따라서 ‘전쟁범죄’조항을 만들어 독일로부터의 강제배상을 정당화하려 하였다. 이러한 전후처리에 대해 많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영국은 유럽경제엔진의 모터였던 독일의 경제가 몰락할 시 유럽 전체의 회복을 저해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 베르사유가 가져온 것은 평화가 아니었으며, 단지 20년간의 정전에 불과했다. 유럽의 근본적 문제들은 어느 것도 해결되지 못했으며, 결국 제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유럽의 경제적 위상은 전쟁의 순전한 수혜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경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층 악화되었다.
- 독일이 여전히 유럽심장부의 가장 큰 단일 국가로 존재하는 한 ‘독일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나아가 전쟁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독일의 잠재력도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따라서 베르사유조약은 거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1. 국제연맹
※윌슨 曰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똑같이 정치적 독립과 영토적 자주권을 상호보장하기 위해 구체적 약속 아래 국가들이 일반적 연합을 형성하는” ====]세력균형의 국제정치에서 집단안보에 기초한 국제체제로의 전환을 희망

1). 집단안보의 원칙과 세력균형정책의 유사점 및 차이점
(1) 유사점
국가들이 강력한 연합을 형성하여 침략을 막고자 하며, 억지가 실패할 경우 힘을 사용할 용의가 있다는 점
(2) 차이점

집단안보
세력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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