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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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통신사
조선 통신사
조선 통신사란, 조선시대 일본으로 보낸 외교사절 단을 뜻한다. 1404년(태종 4) 조선과 일본사이에 교린관계가 성립되자, 조선 국왕과 막부 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다.
이 때 조선 국왕이 막부 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
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엑 파견하는 사
절을 ‘일본국왕사’라고 하였다.
‘통신’은 두 나라가 서로 신의를 통하여 교류한 [조선 통신사의 행렬] 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절의 명칭은 보빙사, 회례사, 회례관, 통신관, 경차관 등 다양하였다.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에 통신사라는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에 박분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었으나 이 사행은 도중에 정사가 병이 나서 중지되었다. 그 뒤 1429년(세종 11) 박서생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 일본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귀국하였는데, 이것이 실제로 시행된 최초의 통신사라고 할 수 있다.
1811년(순조 11) 마지막 통신사가 파견될 때까지 조선시대에는 20차례에 걸쳐 통신사가 파견되었으며 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이후 수신사로 개칭되었다. 통신사의 파견 목적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왜구의 칩입금지 요청이 주가 되었다. 그 후 일본과의 전쟁상태 종결을 위한 강화와 수호체결, 포로인 쇄환, 대마번의 견제 및 일본국정 탐색, 막부장군의 습직축하 등 매우 다양하였다. 한편 일본에서 조선으로 파견된 일본국왕사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동을 가져와 생필품인 쌀, 콩, 면포 등을 가져갔다.
일본에서 새로운 막부 장군의 승습이 결정되면, 대마도주는 막부의 명령을 받아 통신사청래차왜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는 중앙 관리 3명 이하로 정사, 부사, 서장관을 임명하고 300∼500명으로 구성되는 사절단을 편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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