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역사 Ⅰ.역사
한국에서 소비자협동조합의 효시는 1920년대초 설립된 ‘조선노동공제회’라는 주장이 있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어 근거가 미약하다.한편 1958년도 농협법에 의해 설립된 지역농협이 운영하는 구판장 사업도 있지만 운영시스템이나 조합원의 의식 등으로 볼 때 소비조합으로 보기 어렵다.1970년대에는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한 소비조합이 창립되었지만 독재정권하에서 허약한 노조의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회사나 정부 혹은 외국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운영되어 자치와 자립에 입각한 협동조합 운영원칙에 부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한계가 많아 도태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런대로 사회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현재의 생협(생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1980년대 사회적 배경
①화학농약과 비료에 의한 획일적 증산정책이었던 녹색혁명과 저곡가를 전제로 한 저임금정책 등 농업희생을 기반으로 한 중화학공업정책으로 인해 농촌이 피폐해지고 농촌공동체 붕괴현상이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②80년대초 수입개방이 시작되면서 수입농산물에 대한 안전성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③87년 민주화대행진 이후 민중당의 정치권 진입 실패에 대한 반성 속에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지역에 기반을 둔 대중운동을 모색하게 된다.
2.도농직거래 생활협동조합의 등장
1985년 도농직거래를 하는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이 설립되어 자연훼손적인 농업방식이 아니라 자연과 순환하는 유기농업으로 생산방식을 바꾸고 농촌생산자와 도시소비자간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에 대하여 고민을 시작하였다.1년간의 고민 끝에 1986년 12월 서울에 한살림 직판장을 개설하면서 도농직거래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생협에서 5명 이상씩 공동체를 만들어 물품을 받는 공동구입 방식을 도입하고, 천주교의 여성지도자들이 결합하면서 1988년 한살림공동체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확대발전하였다.이 형태는 ‘조합원들에게 사전주문을 받아서 소공동체 단위로 유기농산물등의 생활물자를 공급하는 직거래구매생협’의 모델이 되었다.
이 모델은 유기농업을 확산하고 농업에 대한 도시소비자의 동조 및 지원기반을 만드는데 일조하였다.그러나 일반인들이나 참여하는 조합원들에게조차 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생활협동조합을 ‘유기농산물 직거래장’으로 인식시켜, 생활상의 제반 문제를 협동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생활협동조합의 기본사업과 활동을 너무 좁게 한정짓는 결과를 빚었다.
3.지역운동 및 시민운동으로서의 생활협동조합운동
1990년대 초에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지역주민운동의 일환으로 부평생활협동조합(현 인천생협), 성남주민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하였고 시민단체(여성민우회, ymca, 경실련 등)에서도 회원조직을 기반으로 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생활협동조합이 많이 생격났다.이들 생활협동조합은 도농직거래뿐만 아니라 살기좋은 지역만들기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1995년 지방자치선거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원 6명이 광역기초의원으로 당선되는 성과를 올리며 생활정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1995년에는 경기도 안성에서 농민운동을 하던 사람들과 의료인이 결합하여 의료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하였고 이후 인천, 안산, 서울 등으로 확산되었다.
또 공동육아협동조합도 꾸준히 늘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려는 조합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고 교육생활협동조합까지 생겨나 점수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인성을 중시하는 프로그램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4.생활협동조합중앙회와 사업연합체의 탄생
1980년대 초 신용협동조합운동을 하던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1983년 10월에 ‘소비자협동조합중앙회(현 생활협동조합전국연합회)’ 를 결성하였다.이 과정에서 지역에 뿌리를 두고 협동조합을 주도해왔던 지역활동가들이 배제되면서 지역활동가들의 현장경험과 지도력이 유실되었다.뿐만 아니라 지역생활협동조합이 활성화되지 않은 채 설립한 중앙회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이에 1993년에 사업부를 신설하고 물류사업을 통해 재원마련과 회원조합들을 지원하고자 하였다.그러나 지역생활협동조합의 합의 하에 사업부를 만든 것이 아니어서 물류사업에 대한 집중도가 25% 정도밖에 되지 않아 많은 적자를 내고 말았다.
이에 “중앙회의 한 부서로 물류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수도권에 있는 단위생활협동조합들이사업연합을 만들어서 이를 대체하여야 한다.”는 의견들이 모아져 수도권의 15개 생활협동조합들이 1997년 생활협동조합수도권사업연합(현 두레생협 연합회)를 결성하여 중앙회 사업부를 인수하였다.
한편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사업연합에 참여하지 못했던 경인지역의 소규모 지역조합을 중심으로 경인지역생활협동조합연대(현 한국생협연대) 를 결성하였다.이후 한살림도 한살림사업연합을 만들어 생활협동조합사업은 물류사업연합체를 토대로 전개되고 있다.
Ⅱ.한국에서 생활협동조합운동이 갖는 의의
1.생활에서의 민주주의 훈련
한국의 근대 100년은 식민지와 군사독재체제의 시대였기에 근대적 시민의식이 형성되지 못했다.특히 30여 년에 걸쳐 군사독재정권이 급속한 산업화,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자유인권을 포함하여 사람들의 생활의 질은 철저히 무시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받았다.경제성장 최우선이라는 기본방향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었고 간혹 문제를 제기했을 경우에는 철저하게 격리되었다.이런 공포상황에서 시민들의 자율적인 공공영역이 형성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철저히 타율적인 삶을 살거나 극단적으로 수동적 태도를 갖게 되는데,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있어도 불편을 감내하거나 사적으로 해결하게 되었다.예를 들면 공교육에 문제가 있어도 시장에서 사적으로 해결하는 까닭에 한국의 사교육시장은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역으로 공교육이 전반적으로 왜곡되는 현상을 빚고 있다.
1987년 이후 부분적 민주화로 인해 국가와 시장영역에 대한 견제와 발언을 강화하는 등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행되고 있어도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의 자율과 자치의 움직임은 미약하기만 하다.왜냐하면 이러한 운동이 주로 지식인들, 전문가 그룹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활협동조합운동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문제, 즉 사적 영역의 문제를 공적인 영역으로 끄집어내어 자율적으로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점에서 다른 시민운동과 다른 특징이 있다.
생활협동조합은 농약과 화학비료, 각종 첨가물 등의 식품오염과 같은 자신들의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같은 생각을 가진 이웃들과 함께 조직하여, 구매력을 모으고, 유기농업 생산자와 연대함으로써 이러한 개인의 일상적 문제를 해결해왔다.다시 말하면 식생활이라는 개인 삶의 영역이 정치와 시장에 의해 조정되고 그로 인해 왜곡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율에 근거한 자치를 습득하고 기초적인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있는 점에 의의가 있다 하겠다.
2.새로운 사회시스템을 제안하는 대안운동이다.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은 영국이나 유럽과 달리 전통적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에서 나오지 않았다.오히려 87년 이후 시민운동과 비슷한 시기에 태동했다고 볼 수 있는데 시민운동과는 운동방식이 다르다.시민운동이 기존 사회시스템(정부, 시장시스템)을 인정하고 참여를 통해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반면, 생활협동조합은 기존시스템을 인정하지 않고 대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개발하여 사회기준을 바꾸려고 한다.
시장이나 행정에서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있을 때, 시민운동은 그 욕구충족을 법제화하거나 제도화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지만, 생활협동조합의 경우는 욕구충족 기제나 수단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자신들이 이용하면서 확산시킨다.
예를 들면 식품첨가물에 대한 위해성이사회문제 될 때 소비자단체나 환경단체들은 첨가물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나 첨가물 사용에 대한 공개, 표시 등을 요구하는 캠페인이나 운동을 한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