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선군정치가 하나의 종교처럼 되어 있다. 이러한 선군정치의 이론적 근저에는 무엇보다 ‘현실사회주의(really existing socialism) 체제의 붕괴’라는 것이 깔려있다. 북한 지도부는 소련과 동구 국가들이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사회주의 체제의 내재적인 모순과 한계, 비효율성에 있다기 보다는 군을 중시하지 않아 군대가 체제수호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성장과 경쟁보다는 분배와 평등주의 위주의 노선이 결과적으로 노동 동기 약화, 생산성 저하, 경제침체로 이어지는 등 사회주의 실패의 주원인이 됐는데도 이런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북한이 소련․동구에서의 ‘현실사회주의’가 ‘역사의 검증’에서 실패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소련과 동구에서 현실사회주의가 체제유지에 실패한 것은 군대를 ‘국방의 수단’으로만 여겼지 ‘사회주의 정치의 주체’로 보지 못한데 기인한다는 해괴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역사의 준엄한 선택의 시기에 ‘사회주의 배신자들(예컨대 고르바초프나 옐친 등)’을 향해 총소리 한방 울리지 못한 것이 체제붕괴를 가져온 핵심 원인으로 진단한다. 즉, 당의 영도를 받는 군부가 당의 명령과 지시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반동세력’에 합류함으로써 당도, 정권도, 체제도 붕괴되고 말았다면서 따라서 군을 중시해야한다는 논리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사회주의 혁명의 주인으로 불렀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노동자․농민으로서는 더 이상 사회주의 체제를 수호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핵심계급인 노동자 농민보다 군을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군정치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인 노동자와 농민보다 군대를 앞세운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과 충돌하는 ‘변종 사회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