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 당시 한국의 노동운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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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화국 당시 한국의 노동운동의 역사
5공화국 당시 한국의 노동운동

1. 들어가며

1980년대 초 전두환정권의 폭압적인 탄압으로 무너졌던 노동운동은 차츰 70년대 민주노동조합운동을 복원하는 한편, 광주민중항쟁의 처절한 경험을 통하여 새로운 변혁적 노동운동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1983년말 유화조치 뒤부터 그동안 가라앉아있던 노동자들의 불만과 요구가 다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1984년에는 5월의 사납금 인하를 요구하는 대구 택시노동자들의 시위와 농성, 200여개에 걸친 신규노동조합의 결성, 임금인상 요구 투쟁이 벌어졌다. 1985년 4월 대우자동차의 파업.농성투쟁은 대공장 노동자들이 투쟁의 전면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2. 사북항쟁

1979년 6월 어용노조를 타파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본 사북 동원탄좌 노조민주화 세력이 지부장 선거에 나섰으나 부정선거로 이재기가 다시 뽑혔다. 1980년 4월 전국광산노동조합연맹이 42% 임금인상을 위해 싸울 것을 결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원탄좌 지부장 이재기는 회사와 비밀리에 임금 20% 인상에 합의하였다. 그래도 사정이 나은 큰 노동조합에서 20%로 합의해 버리면 작은 노동조합에서는 10% 인상도 어려워질 게 눈에 뻔한 상황이었다.

노동조합 민주화를 추구하던 노동자 25명이 4월15~17일 임금문제와 지부장 선거 문제로 전국광산노동조합에 상경투쟁을 벌였다. 사북으로 돌아와 지부장과 대화를 시작하자 광부들이 모여들어 시위를 벌였다. 지서장과 읍장, 회사측 노무계장이 집회허가를 약속했다.
4월21일 정선 계엄분소에서 집회를 불허하였으나 동원탄좌 노동자들은 지부 사무실에서 이재기 지부장 사퇴와 임금 40%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경찰이 사무실을 포위하고 노동자로 위장하여 농성장에 잠입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지프차로 노동자 4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노동자 500여 명은 사북지서를 점거하였다. 사실상 지역을 장악한 것이다. 시위대는 1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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