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두 번째 베게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던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거기에서 무언가를 들어올렸다. 그 희미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마르고 매캐한 먼지를 콧구멍으로 느끼면서 우리는 몽을 굽힌 채 들여다 보았다. 그것은 철회색을 띈 길다란 머리카락이었다.’
침대와 구분조차 할수 없게 썩어있는 호머 베론의 시체 옆 베갯머리에서 한 가닥의 길다란 철회색 머리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밀리는 썩고 삭아가는 시체에서 건장하고 쾌활했던 연인을 느끼며 오 십년 넘는 시간을 함께 한 것이다.
에밀리. 남부 명문거족 그리어슨가의 마지막 후예. 그녀에게 대한 소개는 후자 쪽이 더욱 어울리고 그녀 자신도 원하는 호칭일 것이다. 한때는 그 번성이 눈부셨으나 지금은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의 전통, 하나의 의무, 하나의 걱정거리로 몰락해버린 그녀, 약간 기괴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비밀에 쌓인 행동, 수 백년 축적된 남부인의 자존심과 정신력의 소유자. 마치 우리 조선시대 지조있는 여인네 같은 이미지의 에밀리. 그녀는 그런 여인이었다.
에밀리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을가 아마도 수 백년을 이어온 대 명문가의 마지막 손으로서 그녀는 그것을 하나의 의무처럼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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