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儒敎化 거부… 고려 건국 이념의 수호자 천추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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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儒敎化 거부… 고려 건국 이념의 수호자 천추태후
중국식 儒敎化 거부… 고려 건국 이념의 수호자 천추태후

천추태후 황보(皇甫·964~1029)씨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혹시 그녀를 아는 사람들도 김치양(金致陽)이란 신하와 간통한 왕비 정도로 기억하고 있기 십상이다. 그러나 고려 다섯번째 왕인 경종(재위 975~981)과 결혼, 헌애황후가 된 그녀는 그정도로 넘어가기에는 고려 초기에 남긴 족적이 너무 큰 여인이다.

여덟 살 위의 사촌오빠와 결혼, 황후가 됐을 때만 해도 황보 소녀는 모든 것을 갖춘 행운아였다. 그녀의 친 할아버지는 태조 왕건이었다. 황보라는 성은 외가 쪽을 딴 것인데, 그녀의 외증조부 황보제공(皇甫悌恭)은 예성강 서북의 패서(浿西) 내륙 일대를 대표하던 호족이었다. 그녀의 동생도 뒤이어 경종과 결혼시켜 헌정황후로 만든 것은 그녀 외가의 위세를 잘 말해준다.

경종에겐 이미 두 명의 부인이 있었지만 그녀는 앞선 왕비들과 치열하게 경쟁, 경종의 유일한 왕자 송(誦)을 낳을 수 있었다. 비록 순서로는 세 번째지만 왕자를 낳은 그녀의 위치는 명목상의 서열을 앞질렀다. 그러나 경종이 재위 6년만인 981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두 살짜리 왕자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남에 따라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두 살짜리가 즉위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오빠가 즉위한 것이다. 그가 바로 성종인데 그가 중국식 유학정치이념의 구현을 치세목표로 삼으면서 그녀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성종은 유학정치이념에 따라 동생들에게 평생 수절을 강요했다. 그러나 열여덟 살의 헌애왕후나 동생 헌정왕후는 수절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또한 유학윤리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고려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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