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화성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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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화성프로젝트
兩京 구상 통한 개혁으로 왕권 강화 노렸다

“소의 테이블 위로 수원 화성과 관련한 상소문 하나가 올라왔다. 상소의 주인공은 임장원(任長源)이라는 늙은 언관이었다. 내로라하는 명문가 출신도 아닌, 더구나 나이 60을 훌쩍 넘긴 그였다. 그는 평소 왕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사심 없이 쏟아냈다. 그는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에게 효도를 다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나라를 동요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물론 신도시 화성을 두고 한 말이었다.

정조는 수원 고을이 있던 화산 아래 사도세자의 새로운 능묘 자리를 정하고, 화산 자락에 살고 있던 백성들을 팔달산 아래로 이주시킨 뒤 신도시로 개발했다. 화성 축성 공사는 신도시 건설의 마지막 단계였다. 1794년(정조 18년) 1월에 시작된 축성 공사는 1796년(정조 20년) 10월에 마무리되었다. 정조는 성곽이 완성될 때까지 이 사업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으며, 또 독려했다.

임장원이 서울로 올라오다 본 것은 그런 화성이었다. 그는 남문과 북문을 통해 화성을 관통한 뒤, 성을 되돌아보면서 생각했다.

‘화성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해도 임금의 효심에 비추어보면 지나칠 것도 없지 않은가. 옛말에도 효(孝)를 행하는 의리에 대해서는 도(道)를 아는 자와만 비로소 말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아니다. 백번 양보해도 수원은 사도세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이며, 더구나 사도세자는 생전에 수원에 묻히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수원에 능묘를 만들고 신도시를 개발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임장원은 정조의 능묘 조성과 신도시 개발을 분명한 어조로 비판했다.

정조도 비판 여론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화성 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논의가 사실상 금기시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볼멘 소리도 있었다. 유언비어 중에는 정조가 ‘중국 진(秦)나라 때처럼 성을 쌓는다’는 말들도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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