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사건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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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재조명
[특집] 인혁당 사건 재조명

사건의 전말

이른바 인혁당 사건 은 고문수사 및 재판기록 조작 등 숱한 의혹을 남겼지만 23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상규명과 사형수 8명을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우리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주도한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 의 발족을 계기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됨에 따라 사건의 전말, 풀리지 않은 의혹들(1), 풀리지 않은 의혹들(2), 진상규명 노력과 전망 등네 차례에 걸쳐 이 사건을 재조명해 본다.

(서울=연합) 孟燦亨·李忠源 기자 =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75년 4월 9일을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바로 이날 새벽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이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지 불과 20여 시간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혁당 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지난 64년과 74년 두 차례였다.

세칭 1차 인혁당 사건 은 64년 8월 14일 金亨旭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 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 일당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 중에 있다 고 발표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국내정세는 대일 굴욕외교를 반대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6월 3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은 같은 해 8월 17일 검찰로 송치됐고,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공안부는 약 20일간 수사를 벌였지만 중정이 발표한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하여 기소한 가치가 없다 는 판단을 내렸다.
일선 검사들의 반발과 고문수사설로 곤경에 처한 검찰 수뇌부는 결국 구속 만료일인 같은 해 9월 5일 숙직중인 서울지검 정명래 검사에게 26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토록 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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