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생애와 교육사상
루소는 18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계몽시대 인물이지만 계몽사상의 주도적 인물이었던 사람들과 사상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는 계몽사상에 공감하는 바가 많았지만 이들의 지나친 합리주의 정신에는 동조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신봉하는 자연주의와 낭만주의 사상을 옹호하기 위하여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정치 사상, 교육사상, 문학과 음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지적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가 저술하는 분야는 지적 분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의 정치학적 저서는 정치 이론뿐만 아니라 정치실제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프랑스 혁명은 그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쓴 『에밀』은 당대는 물론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자연주의, 아동중심교육사상, 진보주의 등은 모두 그의 교육사상에서 연원 된 것이다. 루소는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사상가이다.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시계수리공의 아들로 출생한 루소는, 1749년 디종의 아카데미 현상 논문에 <학문과 예술론>이 당선됨으로써 사상가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되었다. 1768년 테레즈르 바쇠르와 결혼하고, 1770년에 파리로 돌아온 그는, 심한 피해 망상 속에서 자기 변호를 위한 작품 <루소, 장자크를 재판하다>를 썼고, 계속해서 <고독한 사상가의 몽상>의 집필에 들어 갔지만 완성을 하지 못한 채 1778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집필한 저서로는 <에밀> <불평등 기원론> <정치 경제론> <언어 기원론> <신(新) 엘로이즈> <민약론> <고백론>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이 루소의 <에밀>은 출판되자마자 파리학부에 고소를 당하고, 결국 루소에게는 유죄를 선고 받아 루소는 방랑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에밀의 출판은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파리의 고등법원은 이 책을 압수하여 태울 것을 결정하였고, 루소는 체포를 면하기 위해 몽 모랑시를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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