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따가운 가을 햇살을 재재발기며 팽팽하게 힘이 꼬이고 있었다. 하늘도 째지게 여물어 탕탕 마른 장구 소리가 날 듯했다.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 위로는 뭉게구름이 한 무더기 탐스럽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목포 서쪽 다도해상에 있는 암태도 앞바다는 송기숙(61)씨의 소설에서 묘사된 바와 여일했다. 비록 소설이 쓰여진 때로부터 16년여, 소설 속 상황으로부터는 7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지나갔고, 달력은 아직 한겨울이라 할 2월 초에 머물러 있었지만, 가을과 겨울의 차이도, 16년 또는 70년의 거리도 그곳의 햇살과 물살과 하늘과 구름을 크게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다만, 실장어잡이를 위해 바다 위에 띄워 놓은 여러십척의 무동력 바지선들만이 여일한 풍경에 약간의 변화를 가져다 주고 있을 뿐.
겨울의 오전 7시30분. 목포항의 희붐한 여명을 뚫고 길을 나선 고속 훼리호는 1시간 30분의 항해 끝에 어김없이 암태도 남강 부두에 닻을 내린다. 부두에 대기하고 있던 암태운수 소속 지프형 택시에 타고 순식간에 집 대문 앞까지 당도한 동네 아주머니는 아따, 빠르요, 잉. 폴쎄 와부렀소야라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소설 속에서 대여섯 시간씩 걸리기 일쑤였던 것에 비하면 과연 빨라진 것이다. 그토록 길고도 험한 뱃길을 수백명의 섬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오고 갔던 70여년 전 그때, 이 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