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은 기원전 5세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미를 판정하는 능력으로서의 취미(Geschmack)론이 17, 8세기에 미학의 중요한 논쟁적인 개념으로 등장하였다. 플라톤 이래 서구 사상사에 있어서 미적 가치는 일반적으로 도덕적 선, 또는 과학적 진리의 가치와 동일시되는 것이었다. 그러하던 미적 차원이 적극적인 의미를 띠며 하나의 독자적인 자율영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바로 Immanuel Kant(1724-1804)의 판단력 비판(1790)에 의해서이다.
철학자로서 칸트는 근대철학의 커다란 두 흐름인 경험론과 합리론을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근대철학을 완성시킨 사람이다. 따라서 칸트는 철학사에 있어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실제로 ‘미적 판단력 비판’에서 미적 판단을 도덕적 판단이나 인식적 판단으로부터 근본적으로 구분 짓고, 그것에 독자적인 철학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미적 자율성의 원리를 확립하게 된다. 칸트는 미적 범주를 독자적인 영역으로 확보하고, 미학 이론을 한 철학체계의 전체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올려놓은 최초의 철학자였다.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자연의 세계와 도덕의 세계의 일치성 혹은 연속성을 주장함으로써 그의 철학적 구도를 완성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판단력 비판은 선험적 비판철학의 체계적 완성이라는 요청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 칸트 미학의 성립배경
- 사회적 배경
서양사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17, 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라고 특칭 되어지며, 18세기는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계몽(Aufklarung)” 이란 칸트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된 말이면서 동시에 칸트는 계몽주의의 대표자이다. 계몽주의는 근대 시민계급이 정치적으로 성숙해가는 기초 단계로서, 시민계급의 세계관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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