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새로운 변화
-IMF 관리체제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국가와 정부의 만능에 대한 신화로부터의 해방이다. 오랫동안 우리 국민들은 권위주의국가의 성장위주 개발독재에 길들여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자유를 유보하는 대가로 물질의 풍요를 맛볼 수 있었다. 군부독재도 경제성장으로 인한 풍요만 약속해줄 수 있다면 표를 던질 수 있다는 의식에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IMF 여파로 200만명의 실업자와 200조원의 정부부채가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고, 중산층의 몰락과 새로운 빈곤층의 출현으로 우리는 국가가 국민의 행복에 대한 절대보증인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개인의 삶을 희생시키더라도 충성을 바칠 가치가 있던 것으로 믿었던 국가적 공공선에 대한 신화가 깨어졌다.
둘째, 시장의 체계와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신화로부터의 해방이다. 금융시장의 붕괴에서 드러났듯이, 극한 상황에 이르면 시장체계 자체가 붕괴되고, 이 단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예정조화도, 국가의 물량적인 개입이나 통제도 아무 소용이 없다. 시장이 자율조절기능을 상실하고 붕괴할 수 있는 현실을 통해 시장체계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신화도 깨어졌다.
이 깨어진 두 축 사이를 비집고 힘있게 부상한 것은 시민의식이다. 국가와 정부 그리고 시장에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맡길 수 없다면 시민 스스로 깨어나 자신의 유익에 이바지 못하는 정부와 시장을 일깨워 정부와 시장의 서비스가 시민의 유익에 합당하게 제공되도록 이끌어 가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추상적인 사회의 공공선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민의 유익이 시민들의 새로운 관심거리가 되었다. 시민들은 문자화된 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익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새롭게 했다. 그래서 시민운동은 문자화된 권리의 향유보다 법적인 야단법석(legal noise)이 구체적인 이익을 얻는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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