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열된 세계 제국의 변경인이다.(…)그런 변경에 제국이 가져올 것은 뻔하다. 그것이 변경의 확대를 위한 것이건, 유지를 위한 것이건, 제국이 가장 힘주어 그 원주민에게 주입시키려는 것은 적대의 논리다. 결국 당신들이 요란하게 떠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오늘날 아메리카와 소비에트로 표상되는 두 제국의 적대 논리 내지 그 변형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그것이 당신들이 이념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다.
이문열(48)씨는 장편소설 <변경>으로써 한 시대의 거대한 벽화'를 그리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5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까지의 십수년간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풍경을 이 소설에 담겠다는 것이다. 전9권으로 완결 예정인 가운데 지금까지 나와 있는 6권은 60년대 중반까지를 시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한 시대의 총체적 면모를 담기 위해 작가는 명훈, 영희, 인철 3남매를 번갈아가며 초점 화자로 내세우는 방식을 택한다. 이들 남매는 작가의 앞선 장편 <영웅시대>의 비극적 주인공 이동영의 자녀들이다. 그러니까 <변경>은 <영웅시대>의 뒷얘기에 해당한다. 이문열씨에게 있어 이걸 위해 나는 쓰기 시작했다'는 글감의 앞토막이 <영웅시대>였다면, <변경>은 그뒷토막이라는 말이다. 그 말은 또한 <영웅시대>가 작가의 아버지 얘기를 다룬 가족사 소설인 데 비해 <변경>은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자전소설임을 뜻하기도 한다.
<변경>은 작가의 분신인 인철을 주인공 삼은 자전적 성장소설인 동시에, 그 인철이 미적인 목적을 위해 글을 다루는 장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예술가소설이기도 하고, 또한 한 시대의 벽화'를 자임하는 사회소설 또는 세태소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