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정치 성립의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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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 성립의 역사적 배경
1. 科田과 收租權的 君臣 관계
고려말 鄕吏層의 品官士族으로의 신분 상승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붕당의 형성은 이 때 이미 가능한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개창된 후 관료체제는 강력한 왕권을 정점으로 구축된 대단히 완벽한 것으로 그러한 체제 아래서 신하들의 모습은 왕정을 보필하는 충실한 관료 이상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과전법을 통해서 확립된 것이고 이전에 새로운 지배신분층으로 品官士族층이 확대되던 단계에서도 그러했던가는 田制改革과 易姓革命을 두고 나타난 정치적 대립을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려말 신흥사족들은 신유학을 새로운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 신유학을 수용할 때 사상적, 학문적 취향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중점을 두게 된다. 전제개혁과 역성혁명을 주도한 부류는 《周禮》를 중요시하였다. 《朝鮮徑國典》,《經國大典》이 《周禮》를 따랐다는 데서 이는 드러난다. 그러나 程朱學의 5經 체계는 詩․書․易 3경에 《春秋》․《禮記》를 넣을 뿐이다. 《周禮》를 중요시한 입장은 북송 때 왕안석 계열이었다. 흔히 新․舊法黨의 대립으로 알려진 각각의 사상적 특징은 《周禮》와 《春秋》에 대한 인식에서 두드러진다.
왕안석의 新法黨은 齊一的 萬民觀에 입각하여 강력한 관료체제 중앙집권 정치체제를 추구한 반면, 舊法黨은 세 단계의 정치운영 구도 즉, 향촌사회에서의 지주층의 田戶지배를 기초로 내세우면서, 이것을 포섭하는 관료의 州縣지배와 그것을 다시 중앙으로 집중시키는 황제권의 체계 등을 구상하였다. 다시 말해 향촌 지주층의 정치적,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정 여부가 두 입정을 가늠하는 것이었고, 《周禮》와 《春秋》의 중요성에 대한 각각의 인식도 바로 이에서 비롯하는 것이었다. 皇帝를 정점으로 한 齊民支配의 실현을 理念으로 하는 前者는 新法黨의 관심을 끌었고, 君臣간의 명분을 축으로 하면서 上下身分的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後者는 舊法黨의 기준 經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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