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뜻으로서의 우리 문학은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고 옹골차게 우리의 느낌과 생각을 펴낼 수 있을 때에 한해서 가능하다. 그런데,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특히 1937년 7월 7일에 일어난 중일 전쟁 전후 무렵의 우리 문학은 완전히 순수의 너울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겠다.
물론, 1939년 2월 1일에 창간된 문장지나, 역시 같은 해 10월 1일에 창간호를 낸 인문 평론지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두 문예 잡지는 저마다 문학사적인 뜻을 지니고 있는 점은 인정되지만, 여기저기에 친일적인 발언이 서슴없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가령, 문장 제1집 권두언을 보면 <일로 전시에는 전쟁이 끝나도록 연구실에만 묻혀 있다가 승전 호외를 보고서야 비로소 조국에 전란이 있었음을 안 학자가 있었다 하거니와 …… 문필인은 이러할 수 있는 학자와는 근본적으로 별개의 문화인인 것이다. …… 이제 동아의 천지는 미증유의 대전환기에 들어 있다. 태양과 같은, 일시 동인(一視同仁)의 황국 정신은 동아 대륙에서 긴밤을 몰아내는 찬란한 아침에 있다. 문필로 직분을 삼는 자, 우물안 같은 서재의 천정만 쳐다보고서야 어찌 민중의 이목(耳目)된 위치를 유지할 것인가. 모름지기 필봉을 무기삼아 시국에 동원하는 열의가 없이 안될 것이다>1)1) 「卷頭에 --- 時局과 文化人 ---」, 文章, 1939년 2월호, 1쪽.
라는 말이 나오는데, 벌써 여기서도 어느 정도의 친일적인 빛깔을 엿볼 수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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