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부정의 논리
19세기 이후 인류 문명사의 큰 흐름을 한마디로 하면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이러한 세계사의 큰 조류에 밀려 그 제물이 되었다.
식민지로 전락한 모든 나라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전통사회가 붕괴하는 현실에 당혹감을 느끼고, 그들이 최고의 가치로 믿고 의지하던 전통문화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게된다. 식민지 지배자들의 통치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식민지 사관을 통해서 교육을 받으면서 이러한 자기 것에 대한 회의와 부정의 심리가 더욱 커지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식민지 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던 젊은 지식인에게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난다. 그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꾸준히 민족의식과 민족문화의 계승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이어지지만, 혹독한 식민지 상황에서 그것은 소수의 선지적 민족주의자에 의하여 주장될 뿐 전 국민적 범위로 파급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를 포함한 제 3세계의 약소민족이 겪어 온 지난 1세기 간의 ‘자기 부정의 시대’ 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약소민족들은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자기 부정의 시대’와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는 ‘자기 긍정의 시대’를 맞이한다. 대개의 경우 식민지 해방 투쟁에 앞장섰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이 시기에는 민족주의의 열정이 극대치로 고조되는 동시에, 지난 날 부정되었던 모든 전통문화에 대하여 거의 맹목적 긍정으로 열광하게 된다. 이 시기의 특징은, 전통문화․민족문화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엄격한 이성적 판단에서가 아니라 지난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강렬한 감정적 분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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