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라는족쇄[1]..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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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라는족쇄[1]..그리
명품이라는 족쇄...그리고 그 끝없는 욕망...

프라다, 샤넬, 구찌, 에스라다, 크리스챤 디오르, 베르사체, 루이비통...

명품이라고는 단 한번도 몸에 걸치지못한 나 역시 줄줄 몇가지 메이커를 읋을수 있을만큼 우리 주변에 명품붐이 일고 있다. 단지 고가품이라는 것 말고 그것이 의미하는 여러가지 영향들이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불과 열몇살인 중학생부터 시작해서 한창 그 자체만으로도 생동감이 넘치는 젊은층까지 명품의 그림자는 길게 덮고 있다.

과연 언제부터 한국에서 명품에대해 열광하게 되었을까....

지금 한국에 문제가 되고 있는 명품중독사태와 그에따른 카드빛문제를 한번 자세히 살펴보고다 한다.

지난 7,80년대는 그야말로 조금이나마 잘살기 위해 너도나도 허리띠를 조여가며 생산활동에 매진했던 때였다. 변변한 자원도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오로지 사람만이 재산이었기때문에 열심히 일하고 수출을 하는것만이 한국의 살 길이었다. 때문에 숨도쉬지못하고 생산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노동을 하였던 것이다. 노동착취와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주도한만큼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렇게 발전된 한국을 만든것은 바로 그러한 선대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밥만 제대로 먹울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일은 없었다. 내 가족이 자그마나마 지붕이 있는 집에서 끼니 거르지 않고 살수있는것... 그것이 소망중의 하나였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냉정하게 말해서 물론 내재적인 노력도 기여를 했지만 세계경제사정이 더욱 큰 역할을 했다. 전형적인 석유값의 하향세와 세계무역수지의 전체적인 상승곡선에 편승하여 반발력을 얻어 발전했던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세를 읽지못하고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바 한국은 IMF를 불러왔고 우리는 그에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했다.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 어쨋튼 정치가들의 주장이지만 한국은 IMF체제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불과 2년후 지금과같은 엄청난 경제적불황과 청년실업사태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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