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왕이 폐위되고 진평왕이 즉위하는 과정은 상당한 정치적 변화를 포함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과정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진평왕대 초기의 정치상황을 알려 줄만한 正史의 자료를 많이 갖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 연구에서는 삼국유사소재의 「도화녀․ 비형랑」조를 분석하여 진평왕의 즉위과정이나 동왕대 초기의 정치상황을 이해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도화녀․ 비형랑」조는 비록 믿기 어려운 설화로 전하지만, 그러한 당시의 정치 사회상황과 밀착시켜 분석하고자 한다.
2. 「도화녀․ 비형랑」 조의 내용
진흥왕- 동륜태자(이유는 알 수 없으나 죽음)-만호부인(김씨, 지증왕의 아들인 입종갈문왕의 딸)-眞平王 - 마야부인(김씨, 복승갈문왕의 딸)-혈연의식을 재현
- 사륜(진지왕)-지도부인(박씨)
「도화녀․ 비형랑」조는 진지왕대와 진평왕대의 정치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a부분-제25대 사륜왕의 시호는 진지대왕이며 성은 김씨이다. 왕비는 기오공의 딸인 지도부인이다. 대건 8年(576) 병신<고본에 11년 기해라 함은 잘못이다.>에 즉위하여 어국 4년만에 정사가 어지럽고 황음함으로 하여 국인들이 그를 폐위시켰다. 이전에 사양부의 서녀가 자용이 뛰어나게 예뻤으므로, 때에 도화낭이라 불렀다. 왕이 듣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사랑하려 하니, 도화녀가 말하기를 “여자가 지키는 바는 두 남편을 섬기지 못하는 것이니, 남편이 있는 데에도 다른 데로 가게 한다면, 이는 비록 만승의 위엄으로도 빼앗을(강요할) 수 없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王이 이르기를 “너를 죽이겠다면 어떻하겠느냐”고 하니, 여자가 다시 말하기를 “차라리 거리에서 죽음을 당할지언정 먹은 마음을 달리 할 수가 없읍니다.”고 했다. 왕이희롱하여 말하기를 “남편이 없으면 가능하느냐”고 하니, “되겠읍니다”고 대답하였다. 왕이 (도화녀를) 돌려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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