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불교 형성에 있어서 황실의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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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불교 형성에 있어서 황실의 후원
당대 불교 형성에 있어서 황실의 후원

중국 불교는 당왕조때 절정에 달했다고 일반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당대 불교의 위치를 재검토해볼 때, 비록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종교와 국가와의 관계에 관하여 한정하여 본다면, 唐代는 중국불교사에 있어서 결코 “黃金時代”이거나 “絶頂期”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회창(會昌)년간(841-846)동안 불교는 지나치게 혹독하며, 예전에 경험했던 것 중 가장 가혹한 박해를 당하여서, 그 이후의 불교발달에 치명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대부분의 기간동안 궁중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불교에 대한 태도는 근본적으로 볼 때 부정적인 편이었다.
南朝의 황제들과 비교하여 볼 때, 당왕조 초기의 황제들은 일반적으로 불교라는 종교에 대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唐初의 황제들은 도교에 특별히 마음이 끌리고 있었던 것 같다.그 이유는 도교의 전설적인 창시자인 老子의 姓氏도 같은 李氏였기 때문이며,그래서 그를 당황실의 조상으로 섬겼던 것이다1)1)唐朝 황제의 親道敎的인 雰圍氣에 관하여서는, 유끼 레이몽(結城令聞),初唐佛敎의 思想史的인 矛盾과 國家權力과의 交錯, 東洋文化硏究所紀要,25(1961);8-14.
. 唐朝의 첫번째 황제인 高祖는 불교 신자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였으며, 적극적으로 寺刹이나 僧院의 세력과 재산을 제한시키려고 애썼다. 高祖가 제위에 오른지 약 7년이 지난 625년에, 그는 도교와 유교가 중국에서 기원한데 반하여 불교는 외국으로부터 유래한 종교라고 정의하는 내용의 칙령을 선포했다. 따라서,행진할 때의 순서에 있어서, 도교를 제일 앞서게 하고, 그 다음에 유교가 따르고, 마지막에 불교가 뒤따르도록 하는 법령을 정하도록 지시하였다2)2)道宣,<<集古今佛道論衡>> 卷3,(大正新修大藏經,卷52) 381쪽上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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