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허(憑虛) 현진건은 1900년에 대구에서 한말에 득세한 개화파 집안이며 우체국장인 현경운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아무래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보다는 그에게 글과 가까이 하는 환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일찍이 동경으로 건너가 세이죠 중학을 졸업하고 상해로 건너가서 호강대학의 독일어 전문부에서 공부하다가 귀국했다. 1919년 귀국하여 한말 주일공사관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당숙 보운(普運)에게 입양되었다. 이것은 그가 일본에 대한 인식을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2. 작품 데뷔
그리하여 1920년에 《개벽(開闢)》에 <희생화>를 처음으로 발표했다가 황석우로부터 다음과 같이 혹평을 받기도 했다.
<희생화>는 물론 소설은 아니다. 작자가 무슨 예정으로 썼는지 모른다. 이것은 하등의 예술 형식을 갖추지 아니한 그저 사실을 있는 대로 그대로 기록한 소설도 아니요, 독백도 아닌 일개 무명의 산문이다.
시인 황석우는 평필을 들면서 이런 식으로 현진건의 최초의 데뷔작을 뭉개 버린 것이다. 물론 황석우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이광수를 비롯해서 김동인 나도향 등 대부분이 맨 처음엔 그렇게 습작을 발표했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진건은 유독 황석우를 만나서 이처럼 첫 번부터 창피를 당했으나 그래도 곧 이어 기술면에서는 비교적 딴 작가들보다 우수한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운수 좋은 날> <불> 등이 모두 그 다음해부터 발표해 나간 작품이며 그는 이로 말미암아 당시 《백조》 동인 중 단편 작가로서, 그리고 사실주의 작가로서 가장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근대 문학사에 큰 공적을 남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