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지금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이후 10여일간의 숨막히는 협상과정 끝에 12월 3일 550억 달러의 자금지원 및 이에 따른 가혹한 내용의 구조조정 조건을 담은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올해 들어서 재벌기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고 하루에 40개가 넘는 중소기업들이 도산하더니, 결국 국가경제 전체가 파산하였음을 공식 선언하게 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IMF는 GATT(현 WTO)와 함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하여 온 국제기구이다. IMF는 구조적인 국제수지 적자로 인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단 IMF의 구제금융은 그 수혜국의 경제정책과 경제구조에 대한 조정을 강제적인 조건으로 부과하게 되는데(IMF Conditionality), 이것은 구제금융 수혜국의 경제주권이 크게 제약됨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나라로서 경제주권을 IMF에 이양하게 되었고, ‘제2의 국치일’을 맞게 된 셈이다.
한국 경제가 공황(panic) 상황을 맞고 있는 것만큼, 한국의 경제학도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조화로운 시장경제질서 하에서는 공황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주류경제학(특히 자유주의 경제학)은 눈 앞의 현실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 반면, 시장경제질서의 불안정성 또는 그 모순을 주장하던 비주류경제학(포스트 케인즈학파 또는 맑스경제학)은 구체적 대안의 제시라는 현실의 요구 앞에서는 무력감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현실의 역동성을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기에는 그 틀이 너무나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