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밖엔 뒤늦은 태풍에 비가 내리고 있다. 아직 빨갛고 노란 고운 단풍잎을 보지 못해 가을임을 실감하지 못하지만 드높게만 보이는 파란 하늘이 가을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요즘 부쩍 하늘을 많이 본다. 하늘빛이 요즘처럼 예쁘고 아름답게 보인 적은 없다. 정말 빠져들고 싶도록 예쁘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나는 요즘 이런 저런 순수한 명상에 잠긴다. 때 이른 가을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내고 있던 나는 그러한 아름다운 생각에 좀 더 깊이 빠져보고 싶어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손에 들었다. 처음 30개의 짧은 시들은 제목이 '가을편지'였다. 내가 이 시집에 빠져들지 않을 리 없었다. 처음 부분을 읽으며 난 내가 느낀 가을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맛보았다. 끝까지 읽어가며 나는 계속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니, 책에서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 잠시도 감탄을 멈출 여유 없이 시 하나 하나가 다가왔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아마 시집을 읽고 있는 나의 표정을 누군가 옆에서 보았다면 정말 웃음이 나왔을 것이다.
두 번째 10개의 시 제목은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이다. 난 바다를 참 좋아한다.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탁 트이고 한없이 넓은 바다가 좋다. 여러 시인들이 쓴 바다에 대한 시도 많이 읽어봤지만 이해인 수녀님이 느낀 바다는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시를 읽고 있으니 나에게도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녀의 시에선 바다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 그 바다를 바라보는 한 인간의 모습, 정신적인 세계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감탄도 하고, 반성도 하고, 명상도 하고……. 이러한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를 훌륭하다고 평가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