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波 김학규(金學奎) 장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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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白波 김학규(金學奎) 장군
1900. 11. 24~1967. 9. 20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 만주에서 무장항전 전개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위해 진력
․광복군 제3지대장으로 미 OSS와 합작 국내 정진작전 추진
․1962. 건국훈장 독립장 수여

일제의 국권침탈과 온갖 만행을 보고 구국항쟁을 위해 만주로 망명하다

1900년 11월 24일 평남 평원군(平原郡) 서해면(西海面) 사산리(蛇山里)에서 의사인 부친 김기섭(金基燮)의 4남 2녀 중 4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 호는 백파(白波)이다.
5세가 되던 해에 부친이 돌아가게 되자 가세(家勢)가 기울어 가난하기 이를데 없었다. 어린시절을 고향에서 보내다 1910년 일제의 무력과 강압에 의해 국권이 침탈당하고 온갖 만행을 자행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자 국외로 망명하여 구국항쟁에 나설것을 결심하고 이갑(李甲) 선생 등을 따라 만주로 건너갔다.
1911년 12월 엄동설한에 압록강을 건너 만주 통화현(通化縣) 이밀(二密)이라는 황무지 산골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도끼와 호미로 산지를 개간하고 옥수수와 콩을 심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주경야독에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온면한 생활로 가정형편이 점차 나아졌다.
그 당시 만주 통화현 합니하와 유하현 고산자에는 일찍부터 이시영․이회영․이상룡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들어와 독립군 기지건설에 노력하고 있었다.
1912년 가을에는 이상룡 선생의 경학사의 토대위에 부민단(扶民團)을 창설하였으며 1919년에 3․1운동의 영향으로 동년 3월 13일 한족회(韓族會)라는 새로운 단체를 설립하였다. 한족회는 모든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하여 중앙정부로서 군정부(軍政府)를 수립하고 신흥학교를 통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경신참변후 영국인이 경영하는 학교에 입학하여 신문학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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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자료, 정부자료
출처: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