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 - 선교사병원 방문후 선교간호사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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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학 - 선교사병원 방문후 선교간호사 활약
◆삼육의료원 서울병원 (구 서울위생병원)

1908년 9월 23일 미국인 의료선교사 러셀(Riley Russell, 노설) 박사에 의해 평안남도 순안에서 초가 한 채를 구입, 순안병원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그후 1913년 미국 대총회의 후원에 힘입어 건물을 신축하였고, 1931년부터는 뤼(G.H. Rue, 류제한) 박사가 내한하여 서울 소공동에 2층집을 마련하여 진료하였고, 이 해 11월에 인사동으로 이전하여 경성요양의원으로 개원하였고, 1947년 5월 병원이름을 서울위생병원으로 개명하였습니다.

◆ 당시시대의 간호상황
1935년 11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한국 선교사업이 위축되기 시작되었습니다. 1939년 9월1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대총회는 한국에 있던 선교사들의 철수를 지시하였고,
1941년 2월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갔고, 해방을 맞아 철수했던 선교사들이 해방된 한국교회에 다시 나오게되었습니다.

1950년 6.25사변이 발발함으로 인민군 일부가 한강 인도교의 폭파로 내려가지 못하고, 미군 제트기의 기총 사격을 받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부상을 입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곧 부상을 입은 당시 인민군들도 서울위생병원이 우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7월에는 동 병원을 서울특별병원으로 지정하고, 직원들을 파견함과 아울러, 북한 정부 고급 관리들의 전용병원으로 만들었습니다.

◆ 역사 속 서울위생병원 간호원들의 활약
[6.25]
계속 남진하던 인민군이 UN군의 강력한 반격으로 사상자가 증가되자 7월 중순부터 8월 초순까지 3차례 걸쳐 서울위생병원 간호원 45명을 남한 일선으로 동원하였습니다. 대전에서 인민군 후퇴시 그 곳에 파견되었다가, 인민군과 같이 3.8선을 넘거나 패잔병과 같이 지리산으로 끌려갈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에 17명의 간호원들이 숨었다가 서울까지 무사히 데리고 온 영웅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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