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대 인간의 보편적 전쟁은 결코 없으며, 그리고 인간 종은 서로 파괴한 끝에 멸종(滅種)하려고 생겨난 피조물이 아니다. 1) 루소의 이 말이 틀리지 않은 것은 각 개인의 생명 보존이 종의 희생을 대가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의 자연 본성이 홉스가 기술한 바대로라면 인류는 존속해 나갈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안녕이 자신이 속한 종의 파멸에 결부되어 있다고 믿을 동물이 천지간에 있을 수 있을까. 또 이렇게 해괴하고 가증스러운 종이 과연 두 세대 동안이나마 존속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2) 우리가 루소의 이 통렬한 비평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종의 창조 목적이 종의 자기파괴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개인의 보존을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종의 보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고 있다. 즉 생의 본능이 전자와 후자의 보존을 동시에 확보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째서 홉스는 이와 상반되는 견해를 주장하는 것인가
그 자신이 설정한 제 원칙에 입각하여 추론했다면 홉스는 의당 자연상태는 우리의 생명보존을 위한 배려가 타인의 생명보존을 위한 배려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인 만큼, 따라서 평화에 가장 알맞고 인간 종의 번식에 가장 유리한 상태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홉스가 말한 것이 이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던 것은, 야만인의 자기보존 본능에 사회생활의 산물인 잡다한 정욕을 개입시켰으니까 말이다. 더욱이 야만인의 보존 본능은 자연적으로 충족될 수 있는 반면, 사회인의 다양한 정욕은 그 자체가 법 제정을 필수불가결하게 만들고 있는데도 말이다. (『불평등기원론』, VPW, Ⅰ, 159-1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