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주의 무역정책
중상주의는 그 선행과정인 공업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으며 또 수출 증대를 위한 공업의 보호․육성은 농업의 희생을 토대로 이루어진 결과 농업을 경시하는 중상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중농주의(Physiocracy) 사상이 대두되었는데, 그 가운데 자유무역주의 사상은 그 후 자유무역정책의 기초가 되었다.
19세기 자유무역주의
그러나 이러한 자유무역주의는 각국이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제거를 통해 세계무역을 확대시켜 나가는데 목적이 있으나 19세기의 자유무역주의와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각국은 경제발전 조건이 달라 자유무역으로 인하여 국내 산업이 선진국에 의해 위협을 받을 우려가 크기 때문에 당시 미국과 독일 같은 후진국들은 국내 산업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을 인식함에 따라 19세기 말부터는 다시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었으며, 그 결과 각국은 보호무역 정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각국으로 하여금 근대적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논거를 제시함으로써 이에 입각하여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실시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해밀턴의 주장은 19세기 미국이 보호주의적 수입정책을 강화하는 데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였으며 나아가 선진공업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세계 각국은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 사양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보호주의 무역정책
중 상주의 무역정책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여 산업을 육성․ 장려하고 수출의 증대와 수입을 억제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통해 금․은 의 유입을 촉진하며 이의 유출은 억제하여 국부를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중상주의 시대의 무역사상은 화폐를 중시하는 중금주의(bullionism), 무역과 산업의 보호를 강조하는 무역차액주의(b alanceoftrade), 산업보호주의(industrialprotectionism)로 확산되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금주의는 국가의 부를 금․은 의 축적이 결정한다고 보고 금․은 의 국내 유입을 장려하는 반면 해외 유출을 규제하여 가능한 한 많은 금을 국내에 보유하려는 초기 중상주의의 정책을 말한다.
무역차액주의란 중금주의의 직접적인 거래를 통한 금․은 의 획득보다 무역흑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금․은 을 유입시키는 무역정책이다.
이러한 무역차액주의는 영국의 동인도 회사의 중역이던 토머스먼(Thomas Mun)에 의해 확립되었는데 그는 "일국의 부는 금의 수출을 금지함으로써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과의 무역을 확대함으로써 총 수출이 총수입을 얼마나 상회하는가, 즉 무역수지의 흑자 규모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산업보호정책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중상주의가 중금주의, 무역차액 정책에서 발전한 형태로, 산업경제적인 측면에서 공장제수공업이 발전함에 따라 종전의 상업자본에 이어 대외무역에 중점을 둔 농공업에 대한 연대적 보호를 위한 정책이다.
이는 중농주의자가 국부의 근원을 토지에 두고 농업에 편중하였다는 점에서 중상주의자가 금․은 을중시하여 상업에 편중하였던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또한 상업정책상 자유방임을 주장하지만 곡물의 수입을 금지하거나 곡물의 수입자에게 중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농업보호론을 주장하고 있어 무역정책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자유무역정책은 관세의 철폐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1820년대 이후자 유무역운동이 발달하여 1823-27년에는 하스킷슨 관세법이 개정되었고 1842-46년에는 필(Peel)관세법의 개정으로 원료에 대한 수입관세가 거의 폐지되고 공산품의 관세도 크게 인하되었다.
20세기 자유무역주의
20세기에 들어서도 자유무역주의가 대두되었는데 세계 대공황 이후 각국은 외환관리나 무역통제 등 직접적인 무역제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세계무역은 극도로 위축되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국가 간 경쟁의 격화를 초래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사실을 거울삼아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하여 세계무역을 자유화하고 확대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무역주의는 각국이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제거를 통해 세계무역을 확대시켜 나가는데 목적이 있으나 19세기의 자유무역주의와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19세기의 자유무역주의가 관세 인하와 그 철폐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반면 20세기의 자유무역주의는 관세 인하도 포함하지만 직접적인 무역제한의 철폐와 같은 비관세장벽의 철폐를 주요
즉 19세기의 자유무역이 관세인하를 통해 국제분업을 촉진시키고 이에 의하여 국부를 증대시킬 수 있다고 하는 능동적인 내용을 가지는 반면 20세기의 자유무역주의
그러나 각국은 경제발전 조건이 달라 자유무역으로 인하여 국내 산업이 선진국에 의해 위협을 받을 우려가 크기 때문에 당시 미국과 독일 같은 후진국들은 국내 산업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을 인식함에 따라 19세기 말부터는 다시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었으며, 그 결과 각국은 보호무역 정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산업 발전이 뒤떨어진 미국이나 독일은 선진국과의 자유무역을 할 경우 불리하기 때문에 국내 산업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당시 후진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미국의 해밀턴(A.Ham ilton)과 독일의 리스트(F.List)는 보호무역을 주장하게 되었다.
리스트는 인류의 경제발전 단계를 수렵, 목축, 농업의 원피산업 시대에서 농․공시 대필, 그리고 다시 농․공․상시대로 발전함에 따라 국가의 경제정책도 이러한 발전 단계에 따라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당시 농․공․상의 최고 발전 단계에 있는 국가는 영국과 프랑스였으며, 농․공의 발전 단계에 있는 독일은 국내 유치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만 일 독일이 영국과 같이 자유무역을 실시한다면 국민경제의 발전이 저해될 것이므로 일국의 경제정책은 그 나라의 발전상태에 따라 세계 경제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의 관점에서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70년대 이후 선진국 간 산업구조가 동질화되고 또한 일부 첨단산업 분야를 제외하고 거의 전 산업에 걸쳐 선진국과 신흥공업국 간의 산업구조도 동질화되었다.
경영학-최수형/추교완 외 1명 저, 피앤씨미디어,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