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고전] 영회고적오수 -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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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고전] 영회고적오수 -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회고
詠懷古跡五首(其四)-杜甫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회고-

1. 작품 해제
蜀主征吳幸三峽 (촉주정오행삼협) 유비가 오를 치러 삼협으로 행차했다가
崩年亦在永安宮 (붕년역재영안궁) 죽는 그 해에도 영안궁에 있었네.
翠華想像空山裏 (취화상상공산이) 빈 산에 휘날리던 황제의 깃발은 사라지고
玉殿虛無野寺中 (옥전허무야사중) 왕의 전각은 사라지고 들판의 절만 남았네.
古廟杉松巢水鶴 (고묘삼송소수학) 유비의 묘 주변 삼나무와 소나무에 학이 깃들고
歲時伏臘走村翁 (세시복납주촌옹) 복날과 납일마다 촌로들이 찾아오네.
武侯祠屋常隣近 (무후사옥상인근) 제갈량의 묘가 언제나 가까이 있어
一體君臣祭祀同 (일체군신제사동) 한 몸을 이룬 임금과 신하가 제사도 함께 받는다네.

2. 역사적 배경 - 이릉전투
이 시는 이릉전투 이 후, 유비의 죽음을 떠올리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이릉전투는 관도 대전, 적벽 대전과 함께 삼국지 3대 대전의 하나이다. 적벽대전의 공로와 형주 임대에 대한 손권측과 유비측의 입장대립으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 문제는 협약을 통해서 해결되었으나 추후에 유비가 한중을 공격하면서 오군과 위군의 협공에 의해 관우가 목숨을 잃고, 이에유비는 분노한다.
유비가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에게 무리하게 복수전을 행하던 도중 장비가 암살당하고, 그 목이 손권에게 전달된다. 221년, 후한이 멸망하고 제위에 오른 유비는 군을 이끌고 오(吳)로 진격한다. 처음에는 유비군의 우세가 두드러지고, 육손은 곤경에 처하였다. 하지만 요새화된 진영에서 수비로 일관하며 촉군의 도발에 꿈쩍도 하지 않자 촉군의 사기는 떨어지고, 유비의 오판으로 세워진 긴 진영은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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