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딥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그러던 와 중 딥스는 학교에서 액슬린 교사와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
여러 놀이들을 통해 액슬린 교사는 딥스가 비상함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액슬린 교사와의 놀이 과정을 통해 딥스는 자신의 마음속의 벽을 조금씩 허물게 된다.
그런데 그 안에는 딥스의 가족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액슬린 교사는 딥스가 무언가 더 이야기하도록 재촉하지 않았다.
이는 딥스가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액슬린 교사와의 성공적인 놀이치료를 마치고 딥스는 영재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나의 친한 친구 한 명은 자폐를 가진 아이를 치료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 친구로부터 자폐를 가진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평소 많이 들었던 터였다.
딥스가 왜 이런 자폐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책의 전반부 내용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딥스의 부모는 딥스를 혼자 내버려두었고, 결국 딥스는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지적인 영역만 발달하게 되는 불균형적인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딥스의 부모님은 원치 않은 아이를 가지게 되며 의사직을 포기해야 했다.
지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딥스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런 모습은 놀이를 통해 딥스가 스스로의 아픔을 끄집어내는 과정이라고 해석된다.
이러한 액슬린 교사와의 놀이 과정을 통해 딥스는 자신의 마음속의 벽을 조금씩 허물게 된다.
이야기는 이러한 놀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딥스와 딥스의 부모님과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진다.
딥스가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액슬린은 딥스가 한 말을 재차 이야기해주며 반문을 했다.
딥스가 하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액슬린 교사의 화법은 마치 '나는 너를 이해하고 있다, 괜찮다, 계속 이야기해 봐라'라는 의미를 상대에게 전달해주는 화법이었다.
나는 액슬린 교사가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딥스와의 대화를 이끌며 딥스를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이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액슬린 교사는 딥스가 무언가 더 이야기하도록 재촉하지 않았다.
이는 액슬린 교사가 인내를 하며 아이에게 신뢰감을 주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는 딥스가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부모로부터 상처받고 세상으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은 딥스는 비록 자폐라는 늪에 빠졌으나 이 과정을 점차 이겨내는 모습은 내게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