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과 한국의 참전
베트남 전쟁이란 1960년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해 북베트남의 지원 아래 남베트남 정부와 이들을 지원한 미국과 벌인 전쟁으로 월남전이라고도 불린다.
1964년 8월 마침내 통킹만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이다.
당시 베트남 전쟁 중에 있던 미국은 한국에 특별경제 원조를 약속하며 한국의 파병을 요구하였다.
1964년 8월 마침내 통킹만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미국은 남베트남군이 더 이상 남베트남을 위해 싸우지 않고 오히려 북부의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주의를 내세워 통일에 대한 염원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베트남 노동당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미국 내에서는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심리적 위축감이 팽배하게 되었다.
1972년 3월 북베트남의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되자 미국은 B-52 폭격기를 동원하여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하였으며 1972년 여름이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평화교섭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73년 1월에 있은 파리평화협정에서 미국은 정전협정에 합의하고, 미군 전쟁포로를 석방해 줄 것을 북베트남에 요구했다.
975년 초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 대한 총공세를 벌였고, 마침내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었으며 동반민(DongVan Minh) 대통령이 항복함으로 전쟁이 종결되었다.
당시 베트남 전쟁 중에 있던 미국은 한국에 특별경제 원조를 약속하며 한국의 파병을 요구하였다.
또한 베트남 참전을 계기로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미국의 대중문화는 역설적이게도 1970년 데 한국 사회의 저항문화 형성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먼저 한국군에 의해 일어난 베트남 민간인 피해와 그에 대한 보상 문제이다.
베트남전의 전투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역시 미국 정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민간인 피해자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하는 문제는 미래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위해서도 필요가 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한국군 참전군인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