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속적 여성관의 형성배경은 신학적, 심리학적인면 외에도 사회문화적인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인류문화 초기의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이 존중되었으며 존경받았다. 그러나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발달하면서 부계사회가 이루어졌고 여성은 열등시 되었다. 그러므로 종속적 여성관의 사회문화적인 형성배경은 '가부장제 사회'의 발단에서부터 말미암는다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제의 기원은 수렵채집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여성은 생산과 재생산에 핵심적인 기능을 했으며, 그들의 경제적 기여는 전체 식량의 60-80% 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혼인형태(pairing marrige)는 수렵채집물의 분배방식상 남녀간의 차이를 낳아 불평등 관계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즉 혼인을 함으로 남성은 부인의 채집물을 확보하게 되고 공공집회에서 발언권을 갖게 되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되나, 여기에 반해 여성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권리도 증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혼인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의 성적 자유가 제한되었으며 구타와 집단강간 같은 물리적 폭력이 채택되기도 했다. 또 출산을 남성정자의 생명력으로 간주하여 여성의 모성 역할을 은폐했으며, 부인의 노동을 남편이 통제할 수 있다는 이념도 나타났다.
이렇게 수렵채집사회에서 보여지던 가부장제 사회의 양태는 원시농경기에 들어서서 더욱 심화되었다. 이는 농경이후 대두된 정착 생활의 결과, 토지경쟁과 안정된 인구 충원의 문제가 핵심이 되어, 남성은 영토방어를 담당하고 여성은 양육과 농경 등 집안일을 담당했던 것이다.
또한 이시기에 여성교환을 보장하는 매개물로서 신부대(bride price)가 등장했으며, 이 신부대는 나중에 여성과의 직접교환물로 전환되어 결국 여성의 지배는 제도화되었다. 즉 젊은 남성은 신부대를 위해 자신의 생산물을 연장자에게 바치며, 연장자는 남성과 여성의 노동력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 남성들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그러한 연장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으나, 여성의 자율성은 이미 상실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부장제의 성립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는 강화되었으며 여성을 열등하게 평가하는 이데올로기가 정착되었다. 따라서 가부장제는 남성의 여성 지배체제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국가조직이 발생한 후, 20세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도 심화되어 종속적 여성관을 뿌리내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