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책은 조선의 건국에 관한 기존의 연구성과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개척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기존의 연구들이 주로 조선의 건국 그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 책은 고려의 불행한 운명에 대한 설명을 전체 7개장 중에서 4개장을 할애할 정도로 조선 건국의 기원을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찾아가려는 치밀한 기획을 담고 있다. 이점에서 이책은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건국을 하나의 단절로 이해했던 기존의 연구들과 달리, 여말선초의 혁명과 문명 전환과정이 드러내는 단절의 역사를 봉합하여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내적 연속성을 복원했다.
다음으로 이책은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단순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역사에서 정치와 이념을 교직(交織)시켜 재구성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이것은 이시기를 다룬 대부분의 기존 연구들이 주로 역사학과 철학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져 역사와 이념을 소통시키지 못했던 한계를 극복하고자하는 저자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특히 저자는 여말선초의 정치사를 편협한 한국사의 시선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비교사의 관점에서 양(洋)(이상 p. 76)의 동서와 시간의 고금을 소통시키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이 책은 여말선초의 정치사를 600년 전의 한반도라는 제한된 시간과 장소를 뛰어 넘어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보편사로 부활 시켰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여말선초의 역사와 이념을 표피적으로 스케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역사와 인간의 이면을 읽는 일종의 ‘두터운 서술(thick description)’을 시도하여 계발적(heuristic) 가치가 풍부한 연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