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지배적 경제관계인 봉건제의 해체와 초기자본주의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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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지배적 경제관계인 봉건제의 해체와 초기자본주의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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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건제의 몰락

봉건제는 13-14세기의 전환기에 이르러 서유럽에서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인구에 비하여 토지의 부족이 점차 심화되어 갔으며, 지력의 쇠퇴 및 한계지의 증가에 따라 토지의 생산성도 낮아졌다. 농민의 빈곤화, 한계지 포기에 따른 경작지의 축소, 그리고 기아와 질병에 의한 인구감소현상 등이 나타났다. 여기에 영주계급들의 전투장비와 사치품의 지나친 구입에 따른 재정 압박으로 영주들 또한 재정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같은 구조적인 위기와 갈등 속유서 흑사병이라는 또 다른 파국적인 국면이 중첩되었다. 1348-50년 사이에 전유럽을 휩쓸고 그 이후에도 빈번하게 발생한 흑사병은 파멸적인 인구 격감과 노동력 부족을 야기했다. 대부분의 장원에서는 토지가 남아돌고, 경작자를 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지배계급은 수입 보존과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노동자의 이동과 임금을 강력히 억제하려고 했다. 농민들은 더 좋은 보유 조건을 찾아 다른 촌락이나 또는 도시지역으로 빈번히 이동하였다. 두 계급 사이의 이해관계의 대립과 적대감이 심화되면서 그것은 바로 격렬한 계급투쟁으로 비화하였다. 이런 현상의 가장 극적인 표출형태가 14세기 후반과 15세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농촌지역의 반란이었다.
14-15세기의 전환기에 이르자 장원제 자체가 붕괴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륙과 영국 모두에서 더 이상 예속농민들의 부역을 통한 직영지의 경영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15세기초까지 대부분의 성/속 영지에서는 중세 장원의 농업경영 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 농업구조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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