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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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생애와 사상
1. 생애
공자(孔子)는 노(魯)나라 양공(襄公) 22년(B.C. 551) 창평현(昌平縣) 추읍(陬邑, 현 山東省 曲阜)에서 아버지 숙양흘(叔梁屹)과 어머니 안징재(顔徵在) 사이에서 태어나 노(魯)나라 애공(哀公) 16년(B.C. 479)에 세상을 떠난 인류(人類)의 큰 스승이시다. 공자의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中尼)로 그의 조상은 송인(宋人)으로 알려져 있다.
송(宋)은 은(殷)의 후예이므로 공자는 혈통상으로는 은나라에 속한다고 하겠다. 공자의 선대는 여러 차례 사례관(司禮官, 禮를 맡은 관직)에 속하였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공자가 “어려서 소꼽장난을 할 때도 늘 제기(祭器)를 마련하며 적절한 예절을 갖추곤 하였다”고 한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공자는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계를 돕고자 잡다한 막노동이나 하급 창고직이 등도 마다하지 않고 어머니를 봉양하였던 효자이기도 하였다.
35세에 노나라의 내란으로 말미암아 제나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제나라 경공(景公)은 공자를 등용코자 하였으나 안영(晏嬰)이라는 자의 방해로 얼마있다가 다시 노나라로 돌아왔고, 그후 정공(定公)에게 발탁되어 10여년간 고급관직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한 때는 정공의 섭정을 맡아 난신 소정묘(少正卯)를 목베고 3개월만에 큰 정치를 이루었다는 일화도 남기었다.
그러나 얼마후 공자는 모함으로 말미암아 노나라를 떠나 위‧진 등 여러나라를 다니며, 제후들도 하여금 전쟁 종식과 지성구세(至誠求世)의 정신으로 도덕적 대의를 역설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유가경전의 편찬과 제자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이와같이 공자는 현실에서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격동의 난세를 구하고자, 때로는 유세로 때로는 담판으로 제후들을 몸소 설득하였으나, 말년에 이르러서는 학문과 교육에 의하여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였고, 자신의 운명 모두를 역사적 평가속에 맡겨 두기에 이르렀다. 그가 마지막에 저술한 춘추(春秋)는 바로 그 역사적 정의의 상징이요 표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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