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궁극적 동일성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
주의의 이상은 정치철학의 영원한 규범적 요청이지만, 그것이 논리적으로
극단화될 때 국가와 시민사회가 설 자리가 사라진다. 역으로, 정치공동체
의 통합성과 통일성을 전제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중우정치와 포퓰리스트
적 선동정치의 위험 앞에 곧바로 노출되어 자신의 존재 근거를 침식하기
마련이다. 디지털 혁명의 가장 큰 정치적 가능성으로서 상찬되는 디지털
직접민주주의의 철학적 한계도 바로 이 부분에서 발견된다. 민주적 참여
없이 획득되는 어떤 형태의 정치적 통합도 공허하고, 정치적 존재인 인간
의 실천적 직관에 위배되며, 민주주의의 이상에 반(反)한다는 교훈을 부인
하기 어렵다.
정보혁명의 최신 단계인 디지털화는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것의 구조변
화로 이어진다. 디지털 혁명이 지닌 정치적 함축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현
상은 민주주의의 근대적 수정 양태인 자유민주주의의 출현 이래 불가능하
다고 여겨져온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다시 활성
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국 '정치란 무엇인가'의 문제제기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