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기에 국제교역은 매우 활발하였다. 고려 정부에서도 장려하였고 가장 활발한 교역국인 송(宋)측에서도 적극적인 통상책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공무역(朝貢貿易) 이외의 사상(私商)의 활동도 크게 활기를 띠었다. 개경에는 송상(宋商)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상인들이 내왕하였는데, 그 개경에 이르는 예성강 입구에벽란도(碧瀾渡)가 자리하고 있어, 국제교역항으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송을 비롯한 외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여, 고려의 국명이 서양에 알려져 Corea 라는 호칭을 얻기에 이르렀다. 고려시기에는 중국대륙에 여러 왕조가 성쇠를 겪어, 고려는 여러 나라와 교역하였는데, 나라마다 교역하는 방법이나 물품, 그리고 거래 장소와 통로가 상이하였다.
해외무역은 신라하대 이래 활발하였으며, 고려 왕실 자체도 그에 관련된 설화를 가지고 있다. 해상세력들이 자유로이 국제교역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것은, 국가의 중앙집권화 정책과 방향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고려는 국가간의 공식적인 교역관계를 위주로 편성하되 민간사무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하였다. 민간의 사무역은 이제는 국가의 허가를 전제로 가능하게 되었다. 사무역은 상인이 외국에 파견되는 사신과 동행하여 교역하는 것이 주요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감시를 피해 행해지는 밀무역(密貿易)의 형태도 있었다.
고려전기 고려와 가장 빈번한 교역을 한 나라는 송이었다. 송에 이르는 길은 국초에서 문종 28년(1074)까지는 산동(山東)의 등주(登州)방면에서 거의 직선 통로를 택하여 대동강어구의 초도(椒島) 옹진구(甕津口) 예성항(禮成港)에 이르는 길이 중심이었으며, 그 이후는 거란의 위협을 느껴, 남쪽으로 바뀌었다. 예성강에서 출항하여 자연도(紫燕島) 마도(馬島0 군산도(群山島)를 거쳐 서남으로 나아가 명주에 도달하는 길이었다. 이 항로는 명주·정해에서 순풍을 만나면 3일만에 바다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고, 또 5일이면 흑산도에 도달하여 고려 국경에 들어갈 수 있는 빠른 뱃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