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1)1)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계몽적인 양학자로 활동했으며 또한 민족주의자로 사상적 실천을 하였다. 집안이 가난해서 봉건적 문벌제도에 불만을 가져 학문에 입신한다. 학문에 전념하여 한학을 공부한 뒤에 난학(蘭學)을 공부했다. 1858년에 에도(江戶)에 나와 주쿠(塾)를 개설하여 난학을 가르치면서 영학(英學)을 독파했다. 1860년에 미국의 사절단 일원으로 도미하였고 1861년에는 사절단으로 유럽에 파견되어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포루투갈 등을 방문하여 귀국 후 막부(막부)에 출사하였다. 메이지유신(1868년)후에는 국가의 녹을 고사하고 주쿠 경영에 전념하여 발전시킨 뒤 그것을 게이오숙(慶應義塾)이라 칭하였다. 그는 개국론을 주장하였고, 일본 정치 및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문하생이 정변으로 인하여 퇴관하고 메이지14년에 입헌개진당을 창당할 때 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明六雜誌〉(1873년), 〈民間雜誌〉, 〈時事新報〉등을 창간하여 계몽운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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