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변혁운도의 발생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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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변혁운도의 발생과 발전
1.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개화와 척사의 갈등
개항 이후 정부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에 입각하여 기존의 유교적 지배이념과 정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양의 발달한 사업․군사기술 및 상공업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1880년 12월에는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고, 종래의 5군영을 2군영으로 통합하고, 신식군대를 신설하며, 농업학교와 관영회사를 새로 설립하는 등 각 방면에 근대화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청에 영선사를 파견하고, 일본에는 신사유람단을 파견하여 근대화정책과 그 성과를 조사하게 하였다.
근대화정책에 대해 양반유생들은 강력한 척사운동을 전개하였다. 1881년에는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 주재 청 외교관인 황준헌으로부터 조선책략을 받아와 보급한 데 대해 각 지방의 보수적인 유생들이 척사상소를 올려 격렬히 비판하였다. 근대화정책에 대한 민중의 반발은 1882년 군인봉기로 폭발했다. 봉기한 군인과 빈민들이 대원군의 재집권을 요청함에 따라 대원군은 고종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통리기무아문을 폐지하고 삼군부를 다시 설치하는 등 복고적인 정책을 폈다. 그러나 청이 군대를 파견하여 대원군을 납치하고 봉기를 진압함으로써 민씨 일파의 정권은 재건되었다.
갑신정변(1884)
근대화정책의 입안 및 실무를 맡은 관료들 중 김옥균․홍영식․서광범․박영효․김윤식 등 개화파는 1882년 군인봉기 이후 온건개혁파와 급진개화파의 두 계열로 나뉘어졌다. 종래의 동도서기론을 고수하는 온건개화파는 청이 서양세력의 침투를 막아줄 수 있는 보호막이라고 생각하고 청의 양무운동을 모방하여 점진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하려 했다. 반면에 급진개화파는 청의 내정간섭을 배제하고 민씨 일파를 타도한 후 일본의 명치유신을 본받아 급속한 근대화를 추진하려 했다. 그런데 급진개화파는 청의 간섭과 민씨 일파에 의해 점차 정부 요직에서 소외되어 갔다. 급진개화파는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884년 봄부터 무장정변 준비에 착수하였다.
1884년 12월 4일 급진개화파는 우정국 낙성 축하연 때 자체 무장력과 일본군을 동원하여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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