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직후 정치지도자 노선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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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직후 정치지도자 노선 비교

1. 머리말
8·15 후 3년의 역사를 살필 경우 문제의식은 분단구조화의 원인과 의미에 대한 과학적인 해명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의 해명을 위해서는 당시의 세계 체제적 성격과 국내의 계급구조, 식민통치권력의 철수로 인해 형성된 일정한 ‘해방공간’에서의 정치세력의 활동과 군정의 정책을 포괄적으로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8·15 후의 3년사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는 분단의 회피를 위한 노력들이 아울러 조명되지 않으면 안된다. 비록 그것이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분단과정에 저항한 정치세력의 힘은 그 양과 질에 있어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정도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의 저지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8·15 직후 모든 정치세력은 분단에 대한 공동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즉 어떻게 분단의 구조화가 형성되는지 하는 문제를 살필 경우, 어느 한쪽의 힘만을 살펴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8·15 직후의 상황이라는 것은 당시로서는 각각의 힘들이 동시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긴장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8·15 직후 한국독립당,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의 정치노선을 지도자들의 현실인식과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8·15 이전의 활동
8·15 이후 정치세력들의 정치활동과 노선을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일제의 식민통치 또는 독립운동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는가를 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8·15 이전의 경험은 각 세력에게 서로 다른 부담과 한계 또는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정치세력의 형성사는 각각 임시정부, 한국공산주의 운동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다. 김구와 여운형은 임시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박헌영과 여운형, 그리고 신민당의 전신인 조선독립동맹은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사에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 임시정부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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