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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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의 생애

채만식의 생애

채만식은 1902년 전북 옥구군 잉피면 취산리에서 채규섭 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상당한 부농이었으나 1905년을 전후해 일제의 조선토지수탈 계략에 의해 경제적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채만식이 자란 고장은 금강과 만경강 사이의 평야 지대로서 양반적 유교 전통이 강한 지방이었는데 이곳에 일본의 토지 자본이 집중적으로 진출하여 봉건적 모순과 민족적 모순의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교차하는 지점이 되었다. 이 시기에 채만식의 집안은 양반 선비도, 하층 빈민도 아니고 친일도 항일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 있어 훗날 그의 문학 세계에서도 보여지듯이 소년기의 채만식은 자신의 고유한 계급적 관점을 지니지 못했다.
그는 1918년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중학교)에 입학하여 두 개의 큰 사건을 겪었는데, 3․1운동과 자신의 결혼이 그것이다. 그러나 3․1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추정되고 있으며 결혼 또한 그의 부모에 의한 강제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하여 부인 은선흥 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도 훗날 김씨영이라는 신여성을 아내로 맞아 2남 1녀를 두게 된다. 1922년 중앙고보를 졸업한 채만식은 일본 와세다대학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하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에 따른 조선인 대학살로 인해 급히 귀국하고 만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미두에 의한 부친의 파산, 즉 앞으로 평생 동안 그를 놓치지 않고 따라다닐 경제적 곤궁이었다. 곤궁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지탱하고 단련하는 방식으로서 그가 발견한 것은 글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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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