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주시대의 사상홍수와 유가의 줄기
중국사상의 황금기는 전국시대이다. 춘추 말엽 공자가 일개인의 자격으로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를유 도한 다음 전국시대에 이르러 수많은 학자들이 나타났다. 공자는 성인들의 업적을 집대성하여 유학을 일으키고 그 터전을 마련하였는데, 이에 제자백가가 다투어 일어나 각기 학설을 폈다. 한대 류흠 과 반고 에 의해서 제자백가는 구류십가로 나뉘어져 그 각기의 색을 뚜렷이 하였다. 유가,도가,음양가,법가,묵가,종횡가,잡가,명가,농가를 합하여 구류라 하고 여기에 소설가를 더하여 십가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의 유가는 다만 직업상의 한 계급 일 뿐이지 학파로써의 그 이름을 갖게된 것은 전국시대 초엽의 일이며, 이어서 유학은 전국시대 학술사상의 정통과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공자 이후의 유학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자하가 이끈 것으로 문학에 박식하고 륙예 에도 정통하였으며 덕의 객관적 표현인 례를 중시하였다. 자하 일파는 후세 순자에게 계승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증자가 이끈 것으로 덕을 구심점으로 하여 일관된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맹자에게 계승되었다.
이 시대에 유가와 견줄만한 사상은 묵가와 도가였다. 묵가와 도가사상은 유가와 대립하며 서로의 사상을 공략하였다. 도가와 묵가는 전국시대에 그 전성기를 이룬 이후 점점 퇴색해가는 면모를 보여 주었으며, 특히 묵가는 그 후 2000여년간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반면 유가는 공자에 이어 맹자와 순자가 그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하고 한나라 동중서의 유학 관장으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중국사상의 정통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