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정배경
1907년 나주에서 거의하여 호남창의회맹소 선봉장으로 의병부대를 이끌고 호남일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시다 1908년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하신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선정
2. 주요공적
○ 1907년 나주에서 거의, 호남창의회맹소 선봉장
○ 1908년 의병부대를 이끌고 나주, 함평, 장성, 무안 등지에서 일본군 격파
○ 1908년 4월 광주 어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
김태원(金泰元)
(1870. 9. 16~1908. 4. 25)
국가의 안위가 경각에 달렸거늘
의기 남아가 어찌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겠는가.
온 힘을 쏟아 충성을 다하는 것이 의에 마땅한 일이니
백성을 건지려는 뜻일 뿐 명예를 위하는 것은 아니라네.
― 선생이 아우 聿에게 주는 글에서 ―
1. 머리말
白巖朴殷植(1859~1925)은, 「대체로 각 도의 의병을 말한다면 전라도가 가장 많은데, 아직까지 그 상세한 것을 모르니 후일에 기대하려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한말 전라도의 의병이 가장 활발했음을 알려준다. 실제로 호남지역은 1907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1909년까지 반일의병투쟁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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